2012년 5월 13일 일요일 날씨 : 맑음
지난 4월부터 와라스 시내 근처의 시골 초등학교 5개를 방문하며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지역 교육청에서 친절하게도 와라스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사방으로 학교를 선별해주어 수업이 있는 날에는 오전 8시 수업을 위해 7시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하는 건 괴롭지만, 동네마다 숨막히게 색다른 풍경에 소풍 다니듯 다니고 있다. 동네마다 다른 풍경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들을 소개할까 한다.
1. CAHUISH
이 학교는 내가 방문하는 학교 중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곳으로 와라스 시내 북쪽에 위치해있다. JANGAS까지 30여 분 버스를 타고 가서 선생님들과 함께 또 꼴렉띠보를 타고 20 여 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운행하는 정기 차편이 없어서 선생님들 올라가는 시간, 7시 30분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올라가야 한다. 편도 15솔.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로 선생님들이 수업을 마치는 시간, 오후 1시에 선생님들을 데리러 꼴렉띠보가 올라온다. 난 수업이 오전 10시면 마치는 관계로, 오후 1시까지 마냥 기다리기가 지루해 그냥 혼자 설렁설렁 걸어 내려온다. 차 다니는 정류장까지 한 시간 반, 한 달에 두 번이니까 한다. 내려올 때 보이는 풍경이 아주 멋져서 아직까지는 걸어내려 올만하다.
산골 깊숙이 자리한 마을 아이들이라 교육 자료나 환경에서 소외되어 그런지, 활동 이해도가 다른 학교 아이들에 비해 더디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에 집중 안 하고 어눌한 내 말투 따라 하면서 떠들다가 나중에 나한테 자꾸 대신 해달라고 하는 6학년 그 놈, 조만간 잡을 테다.
2. QUENUAYOC
와라스 시내에서 서쪽에 있고 비교적 가까운 편이지만 차편이 자주 있지 않아 의외로 와라스 시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마을이다. 내가 가본 시골 마을 풍경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고릴라같이 생긴 교장 선생님이 싫어 방문 학교에서 뺄까 고민했던 학교지만, 교장선생님이 지금은 저학년 담임선생님을 맡고 있어 수업 시간에 마주칠 일이 없고, 내가 수업을 하는 4,5,6 학년 선생님들이 너무 잘 도와주시고, 동네 풍경이 너무 좋아 이제는 내게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이 마을에서 보는 와라스 시내와 만년설 쌓인 CORDILLERA BLANCA의 풍경이 일품이다. 그리고 6학년 선생님은 초등교사의 모범 같은 분이어서 정돈된 6학년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생들에게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일깨워주고, 내 모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는 6학년 선생님,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초등 교사로서의 역할과 즐거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3. ICHOCA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방문 중인 이초까 마을이다. 이초까는 와라스 시내 동쪽에 위치해있다. 내가 방문하는 시골 학교 중 문제 아동이 가장 많아 나를 뚜껑 열리게 하는 곳이다. 네 남매가 이 학교에 다니는데, 사내 아이 한 명은 학습장애가 있고, 세 자매는 폭력적인데다, 거짓말을 일삼아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도 포기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한 집의 네 아이들이 하나같이 모두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건 100% 가정환경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집에서 보고 배운대로 행동할 뿐인데 그게 반사회적인 것이라니;;
수업시간에 집중은 안 하면서 매번 목청을 높이는 또 한 녀석은 대놓고 자긴 가난해서 풀도 못 산다고 나보고 사달라고 한다. 심각한 건 이 문제아들이 다 한 반인데, 이 반 담임선생님은 내가 수업 시작하면 자리를 비우신다. 이 분이 교장 선생님;;;; 이 반 학생 수가 제일 많은데;;;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는 진짜 미안하지만, 이 반은 발을 들이는 순간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 나가고 싶어 수업을 대충하고 후다닥 끝내버린다. 이런 아이들일수록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함을 알지만, 섣불리 장기간 책임질 수 없는 애정을 쏟았다간 동심에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핑계로 난 모른 척하는 걸 택했다;; 미안하지만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4. MITUCRO
선배 단원인 정순 언니가 화장실 건축 현장지원사업을 한 마을로, 이곳 풍경도 순위권 안에 드는 곳이다. 학교 출석부에는 10명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출석하는 학생 수는 서너 명이다. 내가 8시 정각에 도착하면 교장 선생님은 그때부터 학생들을 찾으러 동네를 이곳 저곳 돌아다니신다. 그래서 많이 출석하면 네 명, 어떤 날은 두 명만 데리고 수업할 때도 있다.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아쉽지만 수업 분위기는 훨씬 마음에 든다. 아이들에게 더 상세히 설명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말한다고 내 말을 따라한다거나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도 전혀 없고.ㅋ
이 마을에 사는 학생들은 이제 버스를 타고 와라스 시내의 큰 학교로 통학을 한다. 마침 세 아이를 모두 시내 학교로 통학시키는 이 동네 학부모님 한 분을 버스 기다리다 만났다. 정순 언니가 현장 지원 사업 할 때, 몇 번 따라 와서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여기 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시내 큰 학교로 아이들을 통학시킨단다. 학생 수 10명이 안 되어 아마도 내년에는 이 학교는 문을 닫을 것 같다. 처음에는 출석하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 이 학교를 방문 학교에서 뺄까 잠시 고민했지만, 학교에 남은 서너 명의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시내로 통학할 수 없는 가정 형편이거나, 혹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는 가정 환경의 아이들인 것 같아 원래 계획대로 연말까지 방문하기로 했다. 내 추측으로는, 여기 남은 아이들은 아마 중학교는 가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 후, 한 명의 일꾼으로 집안의 농사일을 돕게 될 것 같다.
올 한 해, 재료비 걱정 없이 나와 함께 하는 미술 수업이 이 아이들에게 즐겁고 흥미로웠던 유년기의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할 뿐이다.
출석률 100% 페드로와 호세. 오른쪽의 남자 아이가 호세다. 침착하고 손끝이 여물고, 학습 태도가 상당히 좋다. 하지만 집에서 전혀 관리를 못 받는지 행색도 지저분하고, 씻지 않아 냄새도 많이 난다. 이런 아이들은 정말 집에서 기본만 해주면 아이가 알아서 잘 크는데, 기본은커녕 방치되어 있으니 볼 때마다 안타깝다.
5. SAN PEDRO
이 학교는 와라스 시내에서 남쪽, 리마 가는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30 여 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보통 4명의 저학년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데 동네가 도로 변에 있어 풍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 학생 수도 적고, 저학년인데다, 또 금요일 수업이라 거의 내가 모든 아이들 미술 활동을 대신해주고 결과물을 선물해주고 오는 꼴이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찍은 사진이 없다.
5개 학교를 방문 수업하다 보면 몇몇 거슬리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시골 아이들이라 대부분 순박하고 착하다. 물론 도시 아이들보다 이런 저런 자극에 노출되지 않아 순한 것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시골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허리띠로 때리는 체벌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거나 내 수업 시간에 누가 말 안 들었다고 아이들 중에 한 명이 고자질하면 허리띠에 손을 올려놓으며 교실로 향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체벌에는 당연히 반대하지만, 어쨌든 허리띠보다는 회초리가 모양새가 더 나은 것 같다;;
돌아가는 날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풍경을 보면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하늘, 구름, 산, 나무들이 너무도 그리워질 것 같다. 이 거짓말 같은, 사진 같은 풍경 속에서 언제 또 생을 누려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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