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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3 21:38 KOICA/활동일지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날씨 : 맑음

지난 4월부터 와라스 시내 근처의 시골 초등학교 5개를 방문하며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지역 교육청에서 친절하게도 와라스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사방으로 학교를 선별해주어 수업이 있는 날에는 오전 8시 수업을 위해 7시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하는 건 괴롭지만, 동네마다 숨막히게 색다른 풍경에 소풍 다니듯 다니고 있다. 동네마다 다른 풍경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들을 소개할까 한다.

1. CAHUISH

이 학교는 내가 방문하는 학교 중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곳으로 와라스 시내 북쪽에 위치해있다. JANGAS까지 30여 분 버스를 타고 가서 선생님들과 함께 또 꼴렉띠보를 타고 20 여 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운행하는 정기 차편이 없어서 선생님들 올라가는 시간, 7시 30분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올라가야 한다. 편도 15솔.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로 선생님들이 수업을 마치는 시간, 오후 1시에 선생님들을 데리러 꼴렉띠보가 올라온다. 난 수업이 오전 10시면 마치는 관계로, 오후 1시까지 마냥 기다리기가 지루해 그냥 혼자 설렁설렁 걸어 내려온다. 차 다니는 정류장까지 한 시간 반, 한 달에 두 번이니까 한다. 내려올 때 보이는 풍경이 아주 멋져서 아직까지는 걸어내려 올만하다.

산골 깊숙이 자리한 마을 아이들이라 교육 자료나 환경에서 소외되어 그런지, 활동 이해도가 다른 학교 아이들에 비해 더디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에 집중 안 하고 어눌한 내 말투 따라 하면서 떠들다가 나중에 나한테 자꾸 대신 해달라고 하는 6학년 그 놈, 조만간 잡을 테다.

  

2. QUENUAYOC

와라스 시내에서 서쪽에 있고 비교적 가까운 편이지만 차편이 자주 있지 않아 의외로 와라스 시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마을이다. 내가 가본 시골 마을 풍경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고릴라같이 생긴 교장 선생님이 싫어 방문 학교에서 뺄까 고민했던 학교지만, 교장선생님이 지금은 저학년 담임선생님을 맡고 있어 수업 시간에 마주칠 일이 없고, 내가 수업을 하는 4,5,6 학년 선생님들이 너무 잘 도와주시고, 동네 풍경이 너무 좋아 이제는 내게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이 마을에서 보는 와라스 시내와 만년설 쌓인 CORDILLERA BLANCA의 풍경이 일품이다. 그리고 6학년 선생님은 초등교사의 모범 같은 분이어서 정돈된 6학년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생들에게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일깨워주고, 내 모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는 6학년 선생님,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초등 교사로서의 역할과 즐거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3. ICHOCA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방문 중인 이초까 마을이다. 이초까는 와라스 시내 동쪽에 위치해있다. 내가 방문하는 시골 학교 중 문제 아동이 가장 많아 나를 뚜껑 열리게 하는 곳이다. 네 남매가 이 학교에 다니는데, 사내 아이 한 명은 학습장애가 있고, 세 자매는 폭력적인데다, 거짓말을 일삼아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도 포기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화도 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한 집의 네 아이들이 하나같이 모두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건 100% 가정환경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집에서 보고 배운대로 행동할 뿐인데 그게 반사회적인 것이라니;;

수업시간에 집중은 안 하면서 매번 목청을 높이는 또 한 녀석은 대놓고 자긴 가난해서 풀도 못 산다고 나보고 사달라고 한다. 심각한 건 이 문제아들이 다 한 반인데, 이 반 담임선생님은 내가 수업 시작하면 자리를 비우신다. 이 분이 교장 선생님;;;; 이 반 학생 수가 제일 많은데;;;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는 진짜 미안하지만, 이 반은 발을 들이는 순간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 나가고 싶어 수업을 대충하고 후다닥 끝내버린다. 이런 아이들일수록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함을 알지만, 섣불리 장기간 책임질 수 없는 애정을 쏟았다간 동심에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핑계로 난 모른 척하는 걸 택했다;; 미안하지만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4. MITUCRO

선배 단원인 정순 언니가 화장실 건축 현장지원사업을 한 마을로, 이곳 풍경도 순위권 안에 드는 곳이다. 학교 출석부에는 10명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출석하는 학생 수는 서너 명이다. 내가 8시 정각에 도착하면 교장 선생님은 그때부터 학생들을 찾으러 동네를 이곳 저곳 돌아다니신다. 그래서 많이 출석하면 네 명, 어떤 날은 두 명만 데리고 수업할 때도 있다.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아쉽지만 수업 분위기는 훨씬 마음에 든다. 아이들에게 더 상세히 설명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말한다고 내 말을 따라한다거나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도 전혀 없고.ㅋ

이 마을에 사는 학생들은 이제 버스를 타고 와라스 시내의 큰 학교로 통학을 한다. 마침 세 아이를 모두 시내 학교로 통학시키는 이 동네 학부모님 한 분을 버스 기다리다 만났다. 정순 언니가 현장 지원 사업 할 때, 몇 번 따라 와서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여기 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시내 큰 학교로 아이들을 통학시킨단다. 학생 수 10명이 안 되어 아마도 내년에는 이 학교는 문을 닫을 것 같다. 처음에는 출석하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 이 학교를 방문 학교에서 뺄까 잠시 고민했지만, 학교에 남은 서너 명의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시내로 통학할 수 없는 가정 형편이거나, 혹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는 가정 환경의 아이들인 것 같아 원래 계획대로 연말까지 방문하기로 했다. 내 추측으로는, 여기 남은 아이들은 아마 중학교는 가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 후, 한 명의 일꾼으로 집안의 농사일을 돕게 될 것 같다.

올 한 해, 재료비 걱정 없이 나와 함께 하는 미술 수업이 이 아이들에게 즐겁고 흥미로웠던 유년기의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할 뿐이다.

출석률 100% 페드로와 호세. 오른쪽의 남자 아이가 호세다. 침착하고 손끝이 여물고, 학습 태도가 상당히 좋다. 하지만 집에서 전혀 관리를 못 받는지 행색도 지저분하고, 씻지 않아 냄새도 많이 난다. 이런 아이들은 정말 집에서 기본만 해주면 아이가 알아서 잘 크는데, 기본은커녕 방치되어 있으니 볼 때마다 안타깝다.


5. SAN PEDRO

이 학교는 와라스 시내에서 남쪽, 리마 가는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30 여 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보통 4명의 저학년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데 동네가 도로 변에 있어 풍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 학생 수도 적고, 저학년인데다, 또 금요일 수업이라 거의 내가 모든 아이들 미술 활동을 대신해주고 결과물을 선물해주고 오는 꼴이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찍은 사진이 없다.

 

 

5개 학교를 방문 수업하다 보면 몇몇 거슬리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시골 아이들이라 대부분 순박하고 착하다. 물론 도시 아이들보다 이런 저런 자극에 노출되지 않아 순한 것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시골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허리띠로 때리는 체벌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거나 내 수업 시간에 누가 말 안 들었다고 아이들 중에 한 명이 고자질하면 허리띠에 손을 올려놓으며 교실로 향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체벌에는 당연히 반대하지만, 어쨌든 허리띠보다는 회초리가 모양새가 더 나은 것 같다;;

돌아가는 날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풍경을 보면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하늘, 구름, 산, 나무들이 너무도 그리워질 것 같다. 이 거짓말 같은, 사진 같은 풍경 속에서 언제 또 생을 누려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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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6 17:32 KOICA/활동일지

2012년 5월 6일 일요일     와라스 날씨 : 맑음

익상편 환자 수술 지원 사업 완료

작년 MBC '코이카의 꿈' 촬영 시 의료캠페인이 병행되어 한국에서 오신 안과 선생님이 익상편 환자 10명을 수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술실을 빌려줄 현지 병원과의 협의 과정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수술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후에 코이카 사무소에서 비용지원을 해주어 보상 차원에서 익상편 수술을 지원해줄 수 있게 되었다. 담당은 선배 단원인 정순 언니인데, 언니는 이미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내가 이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익상편은 눈 안쪽으로 가장자리에 피부조직이 자라는 것인데 만약 이 피부 조직이 동공까지 덮어 유착되면 실명까지 될 수 있는 질환이다. 동공까지 덮지 않아도 개인에 따라 두통이나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주로 강한 햇볕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현지 병원에서는 익상편 수술이 미용 목적의 수술로 분류되어 아무런 보험 지원 없이 개인 비용으로 수술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 병원에서는 익상편 수술을 할 수 없단다. 수술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30분 내외면 수술도 끝난다. 현지 의사들은 오전에는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진료를 보고 오후에는 개인 병원에서 진료를 본다. 그래서 안과 선생님 개인 클리닉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비를 많이 낮춰주신 덕분에 10건에 해당하는 수술비 예산으로 15건의 수술을 지원할 수 있었다.

처음에 수술 지원하기로 했던 환자 10명의 연락처가 없어 그 환자들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시골 사람들이라 찾을 방법이 없어, 빈곤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Seguro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익상편 환자를 찾아 13명, 15건의 수술을 지원했다. 환자 두 명은 양쪽 눈에 상당한 수준의 익상편이 진행 되어 양 쪽 모두 수술했다. 하루에 두 명씩만 수술할 수 있기 때문에 4월은 오전에 학교 수업하고 오후에 현장지원사업 준비하며 수술 따라 다니느라 바빴다. 이 지원 사업이 정리되었으니 5월부터는 그래도 좀 한가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5월 2일, 수술 환자를 찾는데 많은 도움을 준, 선배단원인 정순언니가 활동했던 보건소에서 수술 받은 환자들과 의사 선생님과의 수술 완료 후 기념 모임을 가졌다. 감사하게도 수술을 진행한 의사 선생님이 수술 후 눈 관리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시고 지역 텔레비전 세 군데에서 나와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해서 나름 내실 있게 마무리 되었다고 자평한다.ㅋ

요즘 근자감 포텐 터지는 중;;

 

2.

현장지원사업 착수, 1차 14개 학교 부엌 개선 사업 계약

부엌 조리대 만드는 아저씨와 계약서를 작성했다. 50개 학교 중 1차로 14개 학교 공사를 먼저 시작하고, 나머지 학교는 정말 필요한 곳으로 차근차근 찾아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1차 착수금으로 50%를 미리 지불했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5월 안으로 1차 14개 학교 금방 마칠 수 있다고 아저씨가 호언장담했는데 일이 되어봐야 알지;; 아저씨가 방문해서 공사를 마치면 해당 교장 선생님이 관련 서류에 사인을 하고, 교육청에서 모니터링 하는 방식으로 확인을 할 예정이다. 덕분에 내가 50개 학교를 모두 직접 찾아가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실 5개 학교 방문 수업하면서 50개 학교 쫓아다니며 확인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다른 물품지원사업은 아직 조정 중이다. 함께 일할 NGO에서 세부 예산 내역서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서류가 완료되지 않아 시작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지역 공부방에 도서를 지원할 사업이라 단번에 도서 구입만 하면 되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함께 일하려고 하는 단체는 Un techo para mi país라는 남미 지역에만 존재하는 NGO이다. 천막집에서 사는 도시 빈민을 위해 집을 지어준 후, 마을회관을 지어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단체의 주요 일이다. 페루에서는 리마와 와라스 두 곳에서만 활동 중이다.

이 단체에서는 상반기에 총 4개 마을에 마을 회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마을회관은 학생들에게 방과후 공부방으로, 혹은 마을 공동의 모임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건물 건축, 책상, 책장, 의자 등이 모두 구비했는데, 도서 지원 비용은 부족하다고 한다. 내가 이 단체와 함께 하려는 사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4개의 마을회관에 학생들을 위한 도서를 지원하는 것이다. 사실 내 소속은 지역 교육청이기에 교육청 관할이 아닌 이 단체와 단둘이 직접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역교육청 담당자들이 이 사업을 시골 학생들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 긍정적으로 판단하여 지역 교육청 관할로 두고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지역 교육청의 역할은 학부모 연수, 독서 교육 프로그램 지원, 모니터링 등을 통해 이 공부방이 지역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아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관리하는 것이다. 모니터링과 평가를 통해 매해 교육청의 관리 지속 여부를 갱신할 것이라고 나는 들었지만 스페인어가 짧아 확신할 수는 없다. 어쨌든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서도 지역교육청과, NGO와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모델이라 스스로 평가하며 혼자 뿌듯해하고 있다. 일은 시작도 안했는데;;;

 

3.

한국에서 종이접기용 종이 도착!

소섬 언니가 한국에서 종이접기용 색종이들을 잔뜩 보내주었다. 종이접기 협회에 언니가 나 대신 신청해주어 지원받은 색종이라고 한다. 받은 색종이로 어머니 날을 위한 카네이션 접기와 카드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는데 결과물이 너무 예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색지 자체가 화려하고 예쁘니 그것으로 무얼 접어도 결과물이 다 좋게 나왔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종이를 보고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배송료도 많이 들지만 색종이 자체들이 싼 가격이 아니어서 내 돈으로는 살 생각조차 못했던 것들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남은 기간 동안 이 색종이로 종이접기 수업만 해도 올킬!ㅋ

 

4.

일련의 일들을 하면서 3년 차의 단원 활동에 비로소 만족감이라는 걸 조금 느끼는 것 같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제야 어디 내놓을 수 있는 만큼 일하고 있는 것 같아 요즘은 지내는 게 좀 즐겁다. 더불어 내가 하는 일에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요즘 하는 일들은 내가 그들을 제 때에 만나지 못했다면 모두 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여서 난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인복이 많은 사람임을 깨닫는 중이다.

일을 벌이며 페루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타인을 도우려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배우는 게 많다. 다들 자기 이익만 챙기느라 바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현지에서 빈곤계층의 복지와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반갑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금에 연결될 수 있는 지금의 내 위치가 참 고맙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종류의 일에 쓰이는 사람이고 싶다. 절 써주실 데 어디 없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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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9 23:25 생활의발견/2012

2012년 4월 19일 목요일    와라스 날씨 : 세찬 비

1.

4월 초, 3개월 연장했던 동기, 영선언니와, 재희가 임기를 마쳤고, 마침 세마나 산타 연휴 기간과 겹쳐 리마에 가서 공항 배웅을 했다. 이제 정말 다들 돌아가고 혼자 남았다. 물론 시니어 선생님과 다른 여 선생님도 1년 연장하셨지만 평소에 자주 교류하고 지내던 분들이 아니라 새삼 연락을 자주 드리게 될 것 같진 않다. 다행히도 와라스로 돌아오자마자 폭풍같이 일거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 생각할 겨를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원하던 일들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즘은 여기서 지내는 게 조금 신이 난다. 체력 걱정은 좀 되지만;; 지난 2년 간 이렇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들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리고 있다. 새로 발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그 인연들이 내가 구상한 일들의 중요한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있다. 너무 신기할 정도로;;;

2.

작년 연말, 기관을 변경해서 3년 차 올 해에는 UGEL-Hz 라고 불리는 지역 교육청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교육청에서 내가 방문 교육할 수 있는 시골 학교 다섯 군데를 선정해주었다. CAHUISH, SAN PEDRO, QUENUAYOC, MITUCRO, ICHOCA. 각 학교마다 한 달에 두 번씩. 지난주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주제는 미술 활동, 한 가지 수업을 준비해서 5개 학교, 총 10번 수업을 한다. 다양한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적어서 좋고, 여기 저기 시골 동네 소풍 다니듯 다닐 수 있어서도 좋고, 다니는 곳이 시골이다 보니, 흔치 않은 동양 외국인이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을 신기해하며 반겨주는 것도 좋다. 게다가 한 가지 수업을 여러 번 반복하니, 반복할수록 좋아지는 아이들의 결과물에 뿌듯하고, 선생님들에게도 발문 등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서 또 재미있다.

대신 교육청에서 파견한 형태가 되어 아이들 출석관리도 해야 하고, 성적도 내야 한다. 게다가 내 출석부도 만들어서 학교 방문할 때마다 교장 선생님께 확인 도장 받는 굴욕도 견뎌야 하고, 매월 내가 수업한 내용에 대한 활동 계획서도 제출해야 한다. 이런 저런 서류 작업이 좀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등한 자격으로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스페인어로 유창하게 활동계획서를 작성할 것이라는 추측은 금물! 내 활동 계획서는 내 수업을 지켜본 학교 선생님이 작성해주신다.ㅋ 난 그저 형식을 들고 가서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대로 받아쓰기만;;;; 페루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버티기, 그리고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탁하기.

 

3.

한국 다녀오기 전 현장지원사업 승인이 났고, 사업비도 입금이 되었다. 이제 정말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준비하는 사업은 시골 학교 부엌 개선 사업이다. 선배 단원인 정순언니가 시골 마을의 각 가구에 지원했던 사업을 난 교육청과 손을 잡고 시골 학교를 지원한다. 시골 사람들은 장작을 떼 조리를 하기 때문에 연기가 내부에서 잘 빠지지 않아 조리하는 사람의 건강에 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가 외부로 잘 배출되도록 연통과 조리대를 교체, 건축해주는 게 내 지원사업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 아니어서 50 여 개 학교를 지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정순 언니가 이 사업을 여러 번 실행해보고 잘 아는 조리대 만드는 아저씨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가서 내가 이리 저리 동동거리며 뛰어다닐 필요 없이 사업 진행이 수월할 것 같다.

이건 내 사업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업이고, 다른 절반의 비용으로는 물품지원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교육청과, 'UN TECHO PARA MI PAIS'라는 이름의 NGO와 함께 작업하게 될 것 같다. 이 NGO는 마을 기반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시골 마을의 사정에 훤해 아이디어가 많다. 그래서 이 NGO에서 준비하는 학교 관련 사업을 지역 교육청이 승인하면 내 절반의 사업비는 여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사업 또한 교육청과 NGO가 실무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내가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로 내 역할은 돈만 쓰면 되는 역할;;;;;

오늘 부엌개선사업 책임자와 교육청과 NGO 담당자 모두가 모여 회의를 가졌다. 지금까지 실행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이렇게 모인 사람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업비가 입금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사업은 마무리 될 것이고, 내가 떠난 후에도 'KOICA 봉사자 김한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모인 이 사람들의 링크는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니 당장의 결과물이 없어도 그냥 뿌듯했다.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고, 마무리는 한참 멀었는데, 이렇게 설레발치다 부정탈까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이 벅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 결국 이렇게 글로 남기고 만다. 여기서 지낸 지난 2년 간, 이런 일 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꿈만 꿨던 일들이 점차 실현 가능한 일로 눈앞에 다가오니 설레기도 하고 신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일이 되려면 조급하게 움직이기보다 선 자리에서 무리하지 않으며 무르익을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을 마음 속에서 놓지 않으니 결국 이루어지더라는 것. 그리고 난 성취감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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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레끼빠 싸군 2012/04/19 23:46  Addr Edit/Del Reply

    바쁜것도 좋지만 쉬엄쉬엄해~~~ 나도 현장지원사업 막바지....돈만쓰는건데 요게 또 말처럼 쉽지 않네.....계획대로 안되는것도 많고 신경쓸것도 많고....... 암튼 그래도 기분좋게 일하는거 보기 조으네~~~^^

    • HANNA 2012/04/20 08:38  Addr Edit/Del

      응. 동기들 프로젝트 하는 거 많이 봐서 정말 예상치 못한데서 빵꾸날 수 있다고 나도 생각해ㅋ 걱정해줘서 고마워~ㅋ

  2. 곰파 2012/04/20 03:13  Addr Edit/Del Reply

    와, 바쁘시겠어요 :) 바라던 일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되신 거 축하드려요! 한국 다녀오신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답니당 ㅎ 저도 올해 말이면 돌아가게 될텐데, 한국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네요 ^_^

    • HANNA 2012/04/20 08:39  Addr Edit/Del

      번화가 말고는 외관이 그렇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ㅋ
      코이카 나오시기 전에도 한국이 답답하셨으면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실 거구요.ㅋ
      그러지 않으셨으면 엄청 답답하게 변했다고 느끼실거에요.ㅋ
      저는 전자라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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